라디오 드라마 전성시대 1960년대 멜로드라마와 사극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을 때, 다큐멘터리 정치드라마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가 등장했 습니다. 생소한 형태의 드라마 또 서로의 이해 갈등 속에서 어려울 것으로만 생각되었던 정치드라마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67년으로 동아방송의 한운사 작 연속극 「잘 되갑니다.」 이었고 곧이어 나온 드라마가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정치드라마 TBC의 광복 20년이었습니다.
TBC 광복 20년, 장편 다큐멘터리 정치드라마, 이영신 김교식
1967년 8월 7일부터 1977년까지 무려 10년간에 걸쳐 1945년부터 1961년 5. 16이 일어나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조명한 드라마였습니다. 10대의 젊은 시절 때부터 정치인들과 교감을 가졌던 작가 이영신의 광복 20년이 우여곡절 끝에 방송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 니다. 도시, 농촌, 남녀 구별 없이 이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면서 인기 멜로드라마를 능가하는 청취율을 보였고 직장인들은 이 프로그램을 청취하기위해 귀가시간이 앞당겨지기도 하면서 여성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도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청취자들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단시일 내에 끝내려 했던 원래의 계획은 장편드라마로 이어졌습니다. 정치적 이해 갈등 속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화제를 낳기도 했고 협박과 공갈 또는 법정 공방도 있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영신 작가 로서는 뜻밖에 여러 암초에 부딪혀 387회를 끝으로 이 프로그램과 결별 한 후 작가 김교식이 이어받아 1977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최희준이 부른 주제곡에 이어 프로그램은 시작되었고 장민호의 해설로 이어졌습니다. 동아방송의 정계야화에서 시작된 구민의 이승만 대통령 성대모사는 광복 20년에서 결실을 맺어 구민은 이승만 대통령의 성대모사 대명사로 불렸 습니다. KBS에서 운영하는 미국 라디오 코리아에 출연해서도 그 성대모사를 들려주었습니다. 김수일, 주상현, 고은정, 임옥영. 유기현등 그 시절에 이름있던 성우들이 모두 이 프로그램에 등장했고 이승만, 김구, 여운형, 신익희, 조봉암, 김규식, 조소앙, 박순천, 이인, 조병옥, 윤보선, 김두한 등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모든 인사들이 등장했는가 하면 실제 육성이 삽입되었습니다.
이영신님이 정계활동 등을 통해 모은 육성, 현장 녹음물이 삽입되었는가 하면 제작진들도 이 프로그램에 삽입될 녹음 물을 채집하기 위해 동분서주 힘을 기울였습니다. 딱딱하고 어려울 줄만 알았던 이 프로그램은 해방이후 좌우갈등과 동서 냉전 속에서 시작되는 숨 막히는 역사의 진전, 격동의 세월,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정치사가 생생하게 재현되면서 청취자 들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게 전개 되었습니다. 「광복 20년」책이 발간되어 많은 책이 팔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광복 20년에 관해 간단한 글을 쓰려고 준비 하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세월이 흘렀습니다. 광복 20년의 작가 이영신선생님이, 이희복, 김포천, 황일청, 백전교, 박민아, 김석옥님이 함께 촬영한 1960년대 중반의 사진을 접하면서 박서림 선생님이 홈 페이지에 쓴 종심만필의 글을 읽게 되었고 이 글을 읽으면서 필을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과 종심만필의 글이 그것입니다.
<박서림의 從心漫筆> (56)
「李榮信선생의 광복 20년」
박서림
8월 초, 책 한 질을 기증받았다. 李榮信의 大河實錄 <妖女 裵貞子>였다. 표지 뒷면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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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68년 TBC(동양방송) 「光復20년」을 기획 방송함으로써 한국방송사상 최초로 정치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開拓했다.
以來 MBC-R에 「激動 30年」 KBS-R에 「독립운동 비화」 MBC-TV에 「제3공화국」 SBS-TV에 「코리아게이트」와 「3金시대」 SBS-R에 「金斗漢」을 집필했다.
그 뒤. 韓國現代史로 눈을 돌려 亡國의 와중에서 명멸한 무수한 人間群像들 중에서 남다른 榮辱의 길을 걸었던 인물들을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에 몰두 해왔다. 雅康의 新書로 출간예정인 「徐曰甫」「柳彩蘭」 이 영광의 인생을 걸었다면 「妖女 裵貞子」는 욕된 인생을 걸었던 인생이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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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신 형(평소 형이라 부른다)과의 만남은 60년대 초 명동 어느 대포집에서 이루어졌다. 이미 고인이 된 KBS 문예게 金雅씨의 소개였다. 검은 베레모에 뿔 테 안경, 바바리코트의 모습 이었다. 키는 커 보이지 않았다. (이번 만났을 떼도 검은 베레모였다) 알고 보니 김아 씨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황해도 安岳 출신인 형의 나이는 1928년 생으로 되어 있지만 가호적(假戶籍)이고 실제나이는 30년 생이라고 이번에 밝혔다.
형은 정계에 발이 넓었다. 수많은 정계인사와 접촉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모를 秘話들을 꿰뚫고 있었다. 그런 그이기에 정계 비화를 다루는 새 장르를 개척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홈드라마나 멜로드라마가 범람하는 시기에 특이하게 정치드라마를 들고 나온 그의 도전정신을 좋게 평가하고 싶다. 듣자니 그는 동아방송의 <정계 야화> TBC의 <일제 36년 사>와 <민족의 혈맥> (70년대에 내가 썼다) 도 기획 아이디어를 냈고 당시 고 노승병 부장에게 기획비도 받았다고 했다.
<광복20년>은 1968년 8월 7일에 첫 방송했다고 한다. 장민호 해설에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구민의 이승만 역, 유기현의 조병옥 박사 역 등의 특이한 연기는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둔 밤 가시면 별빛도 빛나는데 20년 그 세월에 묻고 묻힌 사연들 영욕도 무심해라
광복 20년.
최희준이 부른 정감있고 박력있는 주제가를 기억하느냐 묻자 즉석에서 위의 가사를 읊었다. 처음에 여덟 줄을 써서 방송작가 이자 시인인 고 金敏夫씨에게 보이니 여덟 줄은 길다며 여섯 줄로 주려 주더란다.
<광복 20년>은 동향인 鄭仁燮 PD 연출로 1년 반 정도로 끝냈는데 정계와 주변의 압력이 예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 후 金敎植씨가 이어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정을 묻자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 후에도 그는 위와 같이 연이어 각 방송 라디오와 TV에 정계비화를 써서 이 분야의 전문가임을 과시하면서 <방송대상 극본상>을 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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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신 형은 정치드라마 아닌 작품도 이따금 쓴 것으로 알고 있다. KBS 문예계 직원으로 근무한 적도 있는데 얼마 되지 않아 그만 둔 것을 보면 틀 잡힌 조직 안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야성(?) 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안산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새로운 정치실록 시리즈 집필에 몰두하는 한편 옛 친구들을 만나 식도락도 즐긴다고 했다.
술은 배포가 맞는 친구와 어울리면 아직도 양주 한 병쯤 거뜬히 치울 수 있다고. 다만 고관절이 여의 치 않지만 운전에는 지장이 없어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한단다. 그 날 나와 만나는 약속 아니었으면 안면도로 김우탁 회원을 찾아가 회를 즐기려 했단다.
형의 노익장과 건강을 빈다.
<박서림의 從心漫筆> (56)
「李榮信선생의 광복 20년」
박서림
박서림 문학비 제막식을 찾은 김광섭, 김남부, 촤환성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2004년 10월 28일
아나 선생님 글
안녕하세요? 블로그 읽다가 이영신 작가님 글 보고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삼김시대 드라마와 라디오 집필하실때 취재작가겸 보조작가로 함께 일했던 사람이예요. 작가님과 소식이 끊겼는데 너무 뵙고 싶네요. 지금쯤 많이 연로 하실텐데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혹 연락이 닿는다면 제 이메일 주소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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