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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문학가이자 경성방송국 아나운서 이석훈님

이장춘 2011. 5. 31. 03:08

 

 

 

  1930년대 문학가이자 경성방송국 아나운서 이석훈님

 

 

이석훈님은  방송국을 거쳐 가신
이름 있는 소설가로 방송국에 근무하는동안에는
아나운서로 축구를 비롯해서 스포츠 중계방송을 하는등

아나운서 활동과 방송극 연출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1908년

1월 27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테어나  평양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님은

방송국에 들어 오기전 조선 방송극 협회 회원으로 1927년  방송국

개국무렵 저녁 9시반에 방송된 축하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해서

젊은 시절부터 방송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일본 와세다 고등학원 문과를 수료한 뒤

잠시 경성일보 기자를 하다가 경성방송국에서 우리말 방송을

실시 할 무렵  방송국에 들어와 서울 라디오 드라마 동호회를 결성하고

1933년 6월, 체흡의 " 곰 " 이훈, 번안님과 함께 지휘 제작해서 방송했고 7월에는

 "결혼성립" 을 직접 지휘해서 방송 하기도 했습니다. 방송국 재직중 1933년 신동아에  

<황혼의 노래>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님은 같은해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하고

극단 문예좌를 조직하는 등 연극 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1934년 대표작

 광인기 (狂人記) 등을 쓰고,1935년 극예술연구회 동인으로 연극 운동에

참가하면서 방송국을 떠난 뒤에도 방송국과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님이"그 여자의 지옥" 이 방송극으로 방송되어

 좋은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문학이나 연극활동에 있어서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짙은 평안도 사투리에 

부드럽지 못한 억양으로 아나운서로서는

어려움을 겼었던 듯 합니다.   

 1936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해서 조광(朝光)의
편집을 맡았으며, 1937년에는 평양(平壤)에서 낙랑문고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1944년 만주국으로 건너가 염상섭, 안수길,

박팔양 등 유명 작가들이 근무하고 있던 만선일보에서 근무했고 

그 이듬해 해방되면서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면서 지내다가

1948년 해군중위에 입대해서 6.25직전에 제대했지만

 6.25때 납북되어 소식을 모릅니다.  


러시아 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지식인의 고뇌와

 애정의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주요작품은 이주민열차
(1935), 결혼(1936),  백장미부인(1939),  질투(1941) 등과,
번역서로 L.N. 톨스토이의 부활이 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