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일을 쓰신 글입니다.
1945년 10월 17일 오전 11시 30분 !
서울중앙 방송국 제3스튜디오, 3평도 못되는 작은
방송실에서 윤용로 아나운서가 “본 방송국 문제안 기자가
지금 방송실에 뛰어들어 와, 중대 기사를 쓰고 있으니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하면서 신나는 행진곡을 틀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서 나는 전날 10월 16일 금요일
오후 4시에 쥐도 새도 모르게 환국한 후 당시의 주한
유엔군 사령관 하지중장의 안내로 다음날인 10월 17일
토요일 10시에 중앙청 회의실에서 국내기자단과
첫 회견을 한 이승만 박사 환국 기자 회견
기사를 쓰고 있었다.
첫 장을 다 쓰자 윤용로 아나운서는
더 참을 수 없어 첫 장을 낚아채다시피 해서 방송을
하고는 다음을 기다릴 수 없어서 “다시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한번
되풀이 읽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둘째 장을 쓰고
그러면 윤용노 아나운서는 다시 첫 장과 둘째 장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 하고 나는 계속해서 셋째 장을
쓰는 그야말로 숨 가쁜 순간의 연속 이었다.
바로 내 옆에는 기사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검열하던 미군대위 검열관도 너무 흥분한 탓인지
검열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내 옆에 묵묵히 선채
기사 쓰는 내 바쁜 손끝만 내려다 볼 뿐이었다. 이렇게
쓰여진 나의 기사는 써지는 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방방
곡곡에 퍼져 나갔다. 이시간이야 말로 내 일생
최고의 시간이었던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