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이승만박사 첫 만남의 추억 / 방송기자 1호 문제안님 육성

이장춘 2010. 6. 6. 05:49



 


 

 

이승만박사 첫 만남의 추억 / 방송기자 1호 문제안님 육성
 
 
1945년 10월 16일 오랜기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반 박사가 해방되어 처음으로
고국땅에 들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10월 17일
KBS전파를 통해서 이승만박사의 환국소식이 국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이승만 박사의 고국에 돌아온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리나라에
한사람밖에 없었던 방송기자 문제안선생님이 그로부터
65년이 지나 이승만박사 첫 만남의 추억을 더듬어
말씀 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승만 박사와 관련된
동영상 한편을 같이 올립니다.  
 
동영상, 이승만박사 VOA 최초의 방송육성

 

 

동영상을 보시기전에 음향을 먼저 끄셔요.

 

 

 
 
 
 
다음 글도 문제안 선생님이
그때의 일을 쓰신 글입니다.

 
1945년 10월 17일 오전 11시 30분 !
서울중앙 방송국  제3스튜디오,    3평도  못되는 작은
방송실에서 윤용로 아나운서가  “본 방송국 문제안 기자가
 지금 방송실에 뛰어들어 와, 중대 기사를 쓰고 있으니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하면서 신나는 행진곡을 틀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서 나는 전날 10월 16일 금요일
오후 4시에 쥐도 새도 모르게 환국한 후 당시의 주한
 유엔군 사령관 하지중장의 안내로 다음날인 10월 17일
토요일 10시에 중앙청 회의실에서 국내기자단과
첫 회견을 한 이승만 박사 환국 기자 회견
 기사를 쓰고 있었다.
 
첫 장을 다 쓰자 윤용로 아나운서는
더 참을 수 없어 첫 장을 낚아채다시피 해서 방송을
하고는 다음을 기다릴 수 없어서 “다시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한번
되풀이 읽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둘째 장을 쓰고
그러면 윤용노 아나운서는 다시 첫 장과 둘째 장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 하고 나는 계속해서 셋째 장을
 쓰는 그야말로 숨 가쁜 순간의 연속 이었다.
 
바로 내 옆에는 기사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검열하던 미군대위 검열관도 너무 흥분한 탓인지
검열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내 옆에 묵묵히 선채
기사 쓰는 내   바쁜   손끝만 내려다 볼 뿐이었다. 이렇게
쓰여진 나의 기사는 써지는 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방방
곡곡에 퍼져 나갔다.  이시간이야 말로 내 일생
최고의 시간이었던 것만 같다.

 


 
 
빙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이승만의 기억 문제안-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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