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음악평론가 이상만·윤희여사·시인 윤동주

이장춘 2024. 6. 16. 11:31

음악평론가 이상만님, KBS음악계장 시절 「한국 문예상」을 수상했을 때 때 음악계 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유...., 최선혜, 노덕래, 윤희여사 (이상만 선배님 부인 : 윤동주 시인 사촌) 이상만선배님, 오용한, 권 오성, 박창학, 뒷 줄 한분 전석 환 (싱어롱 연주자, 삼천만의 합창 진행자로 유명) 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위 사진 이상만 선생님 부인이자 윤동주 시인의 사촌 윤희여사님은 우리세대 홈인테리어 선구자입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활발하게 활동하셨습니다. 70년 대 초 진양아파트 1층에 점포를 열자 신세대 젊은 주부들이 많이 들, 와 새로운 디자인에 수툴(stool - 등받이가없는보조의자)을 마련하였답니다.  윤희여사는 이 수툴을 동그랗고 작게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우리의 응접실 문화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돌아가신 문 복순 선배님 윤 여사 그리고 나 모두 진양아파트에 같은 이웃이었습니다. 윤희여사님은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했습니다. 참으로 재주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이 단독주택에서 공동주택으로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은 닭장 같고 답답하다. 했지만 그 당시 30대 후반부터 50대초주부들은 편리함에 만족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 가니 기존가구가 어울리지 않자 윤여사의 홈인테리어가 주목받았습니다. 기존 가구를 다. 없애기 어려우니 사이사이에 새로운 작은 소품을 예쁘게 배치하도록 아이디어를 줘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했답니다.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저도 그 덕을 톡톡히 봤답니다. 저는1968년 세운상가를 거쳐 진양 맨션. 서빙고 동현대 아파트를 끝으로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북아현동단독주택으로 왔답니다.  김경숙 드림

 

 

오늘 글은 2024년 6월 15일 춘하추동방송 카톡방에 올라 온 글을 기록으로 보존하기 위해 여기에  옮겼습니다. 

 

 

사우회보 5월호에 제가 올린 교향악단에 관한 내용을 이곳에 올려 주면 좋겠다는 분이 몇분 계셔서 그 글만 따로 올려드립니다. 교향악단 창단멤버로 현재 생존 해 계신분은 이 방에서 함께 하시는 김경숙 선배님 부군 이재헌 교수님, 그리고 안용기 님, 미국에 사시는 원경수님이라고 이곳에서 함께 하시는 이상만 선배님께서 말씀 해 주셨습니다. 음악에 관해서 궁금하신 분은 이상만 선배님께 알아보셔요.

 

 

1968년 11월 연세대학교 교정에 처음으로 윤동주 시비가 섰습니다.

그때 음악계장으로 계시던 선배님이 저에게 연세대학교를 같이 가자고 하셔요. 윤동주 시비를 취재해서 “북간도 동포에게” 프로그램에 반영하면 좋을 거라고요. 그 시비 제막식장 연세대학교 교정을 찾아 15분간의 녹음구성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윤동주의 고향 북간도동포를 향해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 여쭈어 보았습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 왜? 관심이 있으셨느냐 고요. 그때 윤동주시인이 사촌 처남이 된다고 하셨죠. 그로부터 저는 윤동주 시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용정에 가 유적지도 관심 깊게 돌아 본적이 있고 경희대학교를 조영식 총장과 함께 창설한 윤영춘 교수님 얘기며 그 아들 가수 윤형주 얘기 등등, 윤동주에 관한 글도 쓰고 시낭송 동영상도 제작해서 올리고요.

 

 

[Terry Song] [오전 7:19]

 

여기 단톡은 하나하나가 다 귀중한 역사입니다 . 여기 아니면 어디서 이런 역사를 자세히 읽겠어요. 감격해서 눈물이 글썽 할때도 있고 반가워 흥분 할때도 있고... 여기에 끼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Terry Song (전영자), 전춘길, ?,  3자매(바이어린, 칠로, 피아노 트리오)가 1950년대 정동방송국시절  주부시간에 연주하는 모습 

 

 

김경숙] [오후 1:46]  위 사진 이상만 선생님 부인이자 윤동주 시인의 사촌 윤희여사님은 우리세대 홈인테리어 선구자입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활발하게 활동하셨습니다. 70년 대 초 진양아파트 1층에 점포를 열자 신세대 젊은 주부들이 많이 들 와 새로운 디자인에 수툴(stool - 등받이가없는보조의자)을 마련하였답니다.  윤희여사는 이 수툴을 동그랗고 작게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우리의 응접실 문화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돌아가신 문 복순 선배님 윤 여사 그리고 나 모두 진양아파트에 같은 이웃이었습니다.

윤희여사님은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했습니다. 참으로 재주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이 단독주택에서 공동주택으로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은 닭장 같고 답답하다. 했지만 그 당시 30대 후반부터 50대초주부들은 편리함에 만족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 가니 기존가구가 어울리지 않자 윤여사의 홈인테리어가 주목받았습니다. 기존 가구를 다. 없애기 어려우니 사이사이에 새로운 작은 소품을 예쁘게 배치하도록 아이디어를 줘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했답니다.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저도 그 덕을 톡톡히 봤답니다. 저는1968년 세운상가를 거쳐 진양 맨션. 서빙고 동현대 아파트를 끝으로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북아현동단독주택으로 왔답니다.

 

 

1959년 김경숙 아나운서와 함께 들어온 동기생들이 입사교육을 시작하던 시절 1959년

5월 3일 남산 약수터에서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김정현, 김순영, 강익수 (계장), 장기범 (실장), 서선벽, 김현수, 김경숙으로 청일점 김주환은 이 사진에 없습니다. (김경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