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고성원
대한민국 방송사상 최고의 히트작으로 불리는 아씨! 대한민국 본격적인 TV 드라마史를 열며 라디오 전성시대, 영화전성시대의 마감을 예고한 그 드라마를 만들어낸 고성원! 머리동영상은 아씨 마지막 253회편 주제곡 이미자의 목소리로 듣고 있다. 그때 방송되었던 실제 주제곡은 「춘하추동방송」 에서만 시청할 수 있다. 방송인 고성원 대한민국 TV방송 출연 연기자들의 총 집합체 「한국 실연자(實演者)협회」에서 발간한 「 한국 TV 드라마 50년사」 첫 페이지는 고성원의 작품으로 장식되어있다. 1962년 드라마 방송을 시작한 KBS가 매주 금요일에 방송되는 「금요극장(금요무대)」 주간 단막극을 편성하고 그 대부분의 프로그램의 고성원의 연출로 방송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몇 개의 프로그램 목록을 뒷면에 붙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2,000년 인기리에 방송된 「송화」에서 드라마 연출의 마지막 지휘봉을 놓을 때까지 40년 가까운 세월 한국 드라마를 이끈 주인공이 되었다. 고성원이 힘을 기울였던 주요 작품을 올렸다. . 초기작품 현대 인형극 무대 앞에 앉은 고성원 고성원 작품목록 1962년 KBS 금요극장 1962년년 2월 2일부터 연중 22편 나옥주 1962년 현대인형극 1962년 TV무대 연출 1962년 7월 17일, 11월 13일 나옥주 1965년 사극 숙부인전 연출 KBS TV 강미애, 윤인자 1967년 사극 칠부칠녀 연출 KBS TV 1967년 사극 연화궁 연출 KBS TV 하명중 김희자 1968년 사극 꽃버선 연출 KBS TV 고은아 1969년 주간 연속극 마지막 낙엽 TBC TV 1970년 일일연속극 아씨 연출 TBC TV 1971년 일일연속극 마부 연출 TBC TV 1971년 일일연속극 동기 연출 TBC TV 1971년 고전해학극 일일연속 시추에이션 여보 정선달 연출 TBC TV 1972년 주간 연속극 외아들 연출 TBC TV 1975년 일일연속극 아빠 연출 TBC TV 1977년 주말연속극 청실홍실 연출 TBC TV 1981년 대하사극 대명 연출 KBS TV 1983년 대하사극 여명 연출 KBS TV 1984년 주말 연속극 봉선화 연출 KBS TV 1984년 지역 드라마 영산강 연출 KBS TV 1985년 사극 젊은 그들 연출 KBS TV 1985년 사극 태평무 연출 KBS TV 1987년 일일 연속극 3월 연출 KBS TV 1990년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연출 KBS TV 1994년 아침 드라마 창밖에 부는 바람 연출 KBS TV 1997년 신년특집 급 옹고집전 연출 KBS TV 1997년 8월 아침 드라마 신부의 방 연출 KBS TV 2000년 아침 드라마 송화연출 KBS TV KBS TV방송 첫해 금요극장 고성원 작품목록 1962년 5월 말까지 금요극장 주간단막극 이용찬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2월 2일 불빛이 섬멸하는 설경 고성원 연출 1962년 2월 16일 기로 김 걸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2월 23일 상처가 가시기까지 주택익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3월 9일 결단 최인봉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3월 16일 노래하는 사절단 이소운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3월 23일 비화 김기팔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4월 6일부터 1962년 4월 20일까지 3부작 원시인과 소녀상 하유상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5월 4일 슬픔을 넘어서 하유상 작 고성원 연출 1962년 5월 31일 인간 검사 1962년 고성원 연출 TV무대 2편 TV무대 이세희 작 고성원 연출 결혼전 1962년 7월 17일 주간단막극 총각인 큰형에게 강제로 배우자를 떠맡기는 이야기
TV무대 정소영 극본 고성원 연출 밤의서정 1962년 11월 13일 주간단막극 최정훈 김 애리사 출연 패인이 된 한 한 남자의 심리 상태를 통해 생활 재건을 다룬 드라마 고성원 연출 카메라 앞에서 열연하는 나옥주 고성원의 드라마는 학창시절부터 이상형 배우로 생각 해오던 ‘나옥주’ 주연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고성원의 초기 KBS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그 수많은 탤런트, 연국배우, 영화배우 중에서 어느 프로그램에 어느 배우가 출연 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배우이름은 최초의 프로그램 금요무대에 출연 해 주었던 「나옥주」, 「숙부인 전」에 출연했던 「강미애」, 「윤인자」, 「꽃버선」에 출연했던 「고은아」,「 연화궁」의 「하명중」, 「김희자」등 몇 배우에 불과하다. 고은아 윤인자 이 여섯 사람은 프로그램 제작방송과 인생 삶에 깊은 인연이 있어서다. 연극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나옥주는 학창시절부터 머리에 그려오던 이상형의 배우로 방송국에 들어와 알게 되면서 부터 고성원의 첫 금요극장 프로그램 주연을 맡아 출연한 이래 고성원 프로그램 단골 출연자가 되었다. 강미애 톱클래스 영화배우 강미애는 인기프로그램 「숙부인전」에서 고성원의 드라마 40년 인생역정에 가장 큰 방송사고을 안겨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시절 또 한사람의 톱클래스 윤인자 역시「숙부인전」 과의 인연이다. 그 내용은 전에 쓴 임학송의 글에 자세히 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분들에게 사랑받은「고은아」, 「꽃버선」에서의 인연으로 역시 임학송의 글에 있다. 연화궁 촬영장면 (위) 여주인공 조희자 (조영일), 남주인공 하명중 아래는 연화궁에 출연하던때의 김희자(왼쪽) 김민자(가운데) 「연화궁」의 「하명중」 기성 연출가와 함께 유명 탤런트 들이 모두 TBC로 옮겼갔을때 신인이었던 하명중을 과감하게 주연으로 등장시켜 성공을 거두고 대 스타로 발돋움, TV탤런트 해외 연기 수출배우 1호가 되었다. 역시 연화궁의 「김희자」, 고성원의 인생 반려자가 되었다. 고등학생 어린 시절 1966년 KBS 탤런트 6기로 방송에 입문해서 연기 생활을 하던 중 1967년 방송된 고성원 연출「연화궁」에 출연해서 인기를 모았다. 탤런트 1기 출신으로 연화궁의 주연을 밑았던 조희자(조영일)와 이름이 같아서 화제가 되었다.
고성원과 김희자 늘 바쁜 생활 속에서 연애한번 제대로 못해본 고성원의 눈에 이상형 배우로 생각 해왔던 나옥주와 같은 이메이지로 비쳐졌고 결국 그 어린 탤런트 김희자와의 사랑이 깊어져 1968년 경희대힉교 2학년 재학 중에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행복할 줄만 알았던 고성원과 김희자는 젊어서 과수가 된 어머니로 부터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김희자는 말한다. ‘결혼하고 졸업도 시켜 주시겠다구 하더니 혹독한 시집살이만 하였지요. 외아들만 보고 살아오던 어머니와 집안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고성원씨가 연출한 「외아들」 프로그램이 방송 될 때는 고성원씨가 며느리 편만 들어 방송 한다구, 시어머니께서 많이 노여워 하셨지요. 김희자 탤런트로 활동하던 시절의 사진 1972년 TBC에서 방송된 남지연 작 고성원 연출 「외아들」은 작가와 연출가 사이에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지만 작가 남지연이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고성원 집안 얘기와 똑같은 극본으로 전개시켜 나갔다. 연출자가 방송 나갈 때 시청 해야 하는 것은 필수지만 프로그램을 눈뜨고는 더 이상 볼수가 없었다. 아주 흥미 있는 얘기여서 고성원의 말을 인용했다. 「남지현 씨하고 나하고 콤비가 되어 「 외아들」을 방송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강부자 하는 거 보고, '야! 네가 다 얘기했으니까 저렇게 하지.' 하고 말씀 하시지만 남지은 씨한테 내가 얘기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우리 외아들 연출 안 하려고 했어요. 내 얘기니까, 그런데 방송국에서 안 된다 이거 해야 된다고 그래서 억지로 밀려서 했는데 나는 집에서 텔레비전 못 봤어요. 아니 우리 어머니하고 똑같아요. 머리를 벽에다 때리면 아이고 아이고 하는데 또 강부자 그렇게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 해요. 시집 간 여성이 시어머니와 갈등 듣는 얘긴데 의도는 안 했지만 「외아들」 자체가 '나' 이고 우리 집사람이 어려서 21살에 나한테 시집 와서 그렇게 시집살이를 했다니까요 할머니뻘 되는 시어머니한테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남들한테 참 잘해 줬기 때문에 그러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너 외아들 에다가 젊은 과부 엄마 에다가 장가 못 간다기에 웃기지 마라 우리 어머니 얼마나 잘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는데 뭐 어쩌고 그러는데 우리 어머니가 나중에 결혼하고 보니 그러더라고요.」 KBS TV 카메라 앞에 선 고성원 아내 김희자 얘기를 하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다. 고성원은 1969년 TBC로 옮겼다. MBC TV가 새로 출범하면서 TBC방송진이 MBC로 옮겨가자 공백상태가 되어 친구이자 TBC에서 드라마 부장을 맞고 있던 김재형의 간청으로옮겨간 것이다. 고성원은 이로부터 제2의방송 생활에 임한 것이라고 했다. KBS TV 초창기 제작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프로를 제작 하더라도 재미와 인기 위주의 내용보다는 공공성부터 늘 체크해 왔고 그것이 공영방송에 투신한 보람이요 방송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업방송으로 적을 옮기면서 방송이 갖는 공공성은 다 같으면서도 상업성을 우선하여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았고 그로인해 방송인의 새로운 자세가 필요했기에 제2방송인생이라고 본 것이다. 이로부터 고성원은 새로운 방송형태의 방송을 추구 해 나간다.
TBC로 옮겨 한, 두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뒤이어 연출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 방송사상 대 히트 작 「아씨」다. 1970년 7월 3월부터 TBC TV 채널 7로 시작된 일일 연속극 임희재 작으로 방송된 아씨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까지 바꾸면서 새로운 시대를예고했다. 이때까지 기껏 한달을 넘기기 어려웠던 일일연속극은 무려 253회나 계속되었다. 뜻밖의 일이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또 하나의 드라마 여로가 KBS 에서 방송된 것은 아씨가 끝난 1년 후의일이었다. 그때는 아씨가 방송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종영되기도 전에 이미 2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으며 주제가 또한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이 무렵은 그야말로 눈, 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