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아나운서와 이장춘의 인연 반세기
이장춘
2024. 5. 31. 20:48
2015년 6월 15일에 발행된 한국아나운서클럽회보 제 18호에 「춘하추동방송 블로그 개설 10주년」이라는 박스기사가 실렸다. 춘하추동방송에 관한 함축적인 내용이 담겨 기사 한편으로 그 블로그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블로그 성격을 쉽게알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다. 고마움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올리면서 이장춘의 방송생활과 블로그 춘하추동방송을 운영 하면서 아나운서와의 인연을 함께 써서 올린다. 한국아나운서클럽 기사내용 춘하추동방송 블로그 개설 10주년 한국방송역사韓國放送歷史의 보물창고, 클럽회보도 볼 수 있어 한국방송역사 韓國放送歷史의 보고寶庫, 춘하추동방송 블로 그(사진- http://blog.daum.net/jc21th)가 10주년을 맞았다. 2005년 4월 24일, 당시 KBS사우회 이장춘 부회장이 회원들의 마음을 연결해 줄 생각으로 종합 인터넷 검색사인 엠파스(empas)에 방송에 관한 글을 올린 것이 출발점이다. 1963년부터 1998년까지 KBS에서 기자, PD, 행정직을 거쳐 전산정보실장, 업무국장, 관재국장, 제주방송총국장을 지낸 이장춘 운영자가 그 무렵 (사) 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직을 맡게 되면서 활동의 폭이 넓어졌고, 엠파스가 폐쇄되며 2010년 2월 ‘ 다음’에 블로그를 개설한 이래 지금은 매일 1000 여명이 찾는, 6월 10일 현재 누적 방문자수 175만 여명에 달하는 파워 블로그가 되었다. 춘하추동방송에는 JODK 경성방송부터 VOA 미국의 소리 방송, VUNC 유엔군총사령부방송, AFKN 미군방송, 지상파방송, 유선방송, 종편 3사까지 방송의 역사와 방송인물은 물론 각종 방송가 소식들이 망라되어 있고, ‘초창기 방송 역사는 아나운서의 역사’이듯 (사) 한국아나운서클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한국아나운서클럽 카테고리에서 클럽회보도 볼 수 있다. 아나운서클럽 박종세 고문은 블로그 개설 10주년을 축하하며 “춘하추동방송에는 흘러간 세월 속에 담긴 소리와 영상을 감상하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감동이 있다.”라고 칭송했고, ‘청사 없는 방송국의 연봉 없는 방송국장’이라고 명명命名한 이정부 회원은 방송인들의 연결고리가 되어 그들의 얘기를 담아주고 싶어하는 이장춘 운영자의 동료애와 방송인의 사명감에 감사와 존경을 보냈다. 아나운서와 이장춘의 인연 반세기 글 이장춘 춘하추동방송에 글을 올리는 필자가 방송현업에 종사했던 1973년 초까지 아나운서실 에는 날마다 3회 이상을 출입했고 하루에 한 프로씩은 아나운서와 함께 제작했으니 하루에 최소한 30분간은 아나운서와 함께 보낸 세월이었다. 남산에 방송국이 있던 그 시절 2층 필지의 사무실 에서 녹음실 주조정실로 가자면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나운서실은 중간 뒷자리에 실장이 앉고 그 앞으로 아나운서들이 팀별로 앉았다. 날마다 나가는 녹음구성 프로그램을 맞고 있던 필자는 원고를 써서 결재가 나면 아나운서 실장에게 그 원고를 보이고 아나운서를 배정받아 녹음실과 녹음시간을 알려주어 정해진 시간에 녹음실에서 만나 프로그램 제작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한다. 날마다 그런 생활을 했기에 필자는 많은 아나운서들과 인연이 맺어졌다. 그 중에서도 외부녹음을 할때는 이팔웅 아나운서와 호흡이 잘 맞아 현장녹음을 함께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는 DBS 동아 방송국이 발족하면서 KBS 인원이 그곳으로 옮겨간 그 빈 자리에 들어갔기에 그 이전에 KBS에 있었던 아나운서는 잘 모른다. 필자가 방송국에 들어갔을 때 임택근 선배가 아나운서실장으로 계셨고 그 시절의 아나운서들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임택근 실장으로부터 이광재, 최세훈, 최두헌, 이병열, 송한규, 박노설, 최규락, 안용민, 배덕환, 이팔웅, 길종휘, 임국희, 김정자, 유영옥, 윤미자, 송경원, 조길자, 등등 필자보다 먼저 방송국에 들어왔거나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신 분들이다. 1964년 임택근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최세훈, 길종휘, 임국희 등 몇 분이 민방으로 떠나고 변웅전, 소병규, 이승상이 새로 들어왔다. 또 지역에서 이원춘, 송경원 등 몇 분이 중앙으로 왔다. 이때 외국어 아나운서가 많이 들어왔다. 최경호(중국어), 윤석현(스페인어), 오택섭 (영어), 박경철(로시아어) 등이 이때 들어왔다. 이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1966년으로 추정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국내, 외 아나운서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은 거의 없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KBS아나운서를 초청 라디오 탤레비젼, 외국어방송 아나운서가 모두 청와대를 방문하고 촬영한 사진이다. 미국의 소리에 가 있었던 김영호 아나운서와 현업아나운서만 빠지고 모두 함께 한 사진이다. 참으로 귀한 사진이다. 외국어 아나운서와 조길자 아나운서 등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듯 했다. 1964년 그 무덥던 날 한 달간에 걸쳐 전국 공보행정반 교육을 같이 받을 때 조길자 아나운서는 필자 곁에 자리해서 세월이 지났어도 그 얼굴을 안다. 외국어 아나운서는 필자가 속한 국제방송국 아나운서여서 안다. 아는 대로 그 이름을 쓴다. 오래된 사진이고 많은 분들이 함께 촬영해서 얼굴을 잘 볼 수 없어 이름을 못 쓴 분도 있고 혹시 잘못된 분도 있을 것임으로 계속 확인해서 보완 하도록 할 것이다. 앞 줄 왼쪽부터 이규항, 방원혁, 김용, 김재영, 이병렬, 김규은,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 소병규, 이근배, ( ? ), 임문택, 이팔웅, 김기행, 뒷줄 서 있는 왼쪽부터 (?), 송한규, 이광재. 강찬선, 최규락, 이종명 (일어) 한 사람 건너, 송인상, 최장훈 (영어) 한사람 건너, 최두헌, 이소원, 한 사람 건너 김용문(불어), 김정자, 박용순 (일어), 최경호(중국어), 손상욱(일어), 네 사람 건너, 이우백(일어) 오택섭 (영어) 한사람 건너 김승한, 김영애, 이수자, 최승빈 아나운서 이 시절의 아나운서들, 앞에 쓴 분 외에 생각나는 대로 이공순, 정경래, 최평웅, 임건재, 김용, 좀 뒤로 가서 김규홍, 박찬숙, 이정부, 정회준, 정희숙, 김영자, 송광자, 전인선, 오랜 세월 못 보았던 그 얼굴이지만 이장춘의머리에 그 모습들이 그려진다. 오랫동안 못 만났던 정희숙, 송광자, 김영자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낸 뒷날 보았을때 그리도 변함이 없었다. 특히 여성 들은 세월이 흐르면 많이들 변하는데... 또 어떤 아나운서 는 전화로 들리는 목소리가 옛날 그대로인 것을 보면 역시 아나운서는 타고난 모양이다. 임택근, 이광재 아나운서가 실장이던 시절 임택근 아나운서와는 동기이면서 제일 연장, 강찬선 아나운서는 칸막이를 한 방에 따로 자리가 마련되었고 「강 과장님」이라고 불렀다. 여러 프로그램을 하셨지만 특히 논설은 오랜 세월 강 과장님의 전담이었다. 대북방송 논설은 본인이 양보하지도 않으려니와 다른 사람이 낭독 할 수도 없었다. 방필주 선생님이 굵은 만년필로 쓴 라면 모양의 글씨는 흔히 라면 글씨라고 불렸다. 강과장님은 녹음전에 대충 읽으면 녹음 중 일사천리로 감정을 살리며 10분간을 읽어 내려간다. 강 과장님이 그 프로그램을 할 수 없을 때는 6.25전 아나운서 출신 김성수 교수가 대신 하거나 이광재 실장이나 김승한 아나운서가 낭독하지만 사전에 몇 번을 읽고 어려운 글자를 고쳐 써도 녹음에 들어가면 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경우는 없지만 만약 위의 분들이 모두 안 나오는 날이면 그 글씨를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다시 써서 다른 아나운서나 성우가 대신 낭독해야 한다. 밤 12시가 되면 KBS 1, 2 방송, 대북방송, 세 채널의 방송에서는 논설이 방송되어 다른 프로그램을 들을 수 없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늘 이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는 얘기기 있었다. 힌번은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명해서 강찬선 과장에게 표창을 한다고 청와대에 초청했다. 프로그램 집필지나 담당자들은 도외시하고 낭독자 에게만 관심을 갖는다고 불만 섞인 소리가 들렸다. 방송을 하던 이장춘이 1972년 말 부터 한국방송공사 창립 작업에 참여했고 공사가 되면서 기획관리실 직제가 마련되면서 초대 관리부 차장이 되었다. 공사의 틀을 확립 했다는 자긍심이 있지만 이로서 이장춘은 관리직 초급간부가 되어 인사발령이 있을때 마다 근무처도 직종도 구별없이 그 이름이 끼어1998년 말까지 재직했다. 그리고 다시 KBS사우회 일을 하면서 아나운서와의 인연이 급속히 진전되었다. 춘하추동방송이 방송역사를 더듬어 글쓰기 시작한지 어언 10년 세월! 대한민국 아나운서들과 이토록 가까운 사이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나운서 역사는 이 땅의 방송역사와 일치하기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나운서에 관한 글이 오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방송인들도 미쳐 못 보았던 수많은 역사기록물들을 춘하추동방송에서 자유로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아나운서 이옥경, 축구중계방송의 원조 박충근, 해방공간의 방송과장 이계원, 농구중계방송의 원조 이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공간에서 혁혁한 공적을 남긴 방송계의 큰 별 송영호, 민재호, 윤길구, 문제안, 윤용노, 전인국, 호기수, 홍양보, 위진록, 장기범, 서명석, 조봉순 그리고 1950년대 60년대까지 방송국에는 아나운서만 있는 줄 알았던 때의 살아 움직이는 放送史料들이, 본인, 가족, 친지들로부터 춘하추동방송 한곳에 모아졌다. 한 방송학자는 방송 역사을 새로 쓰는 「춘하추동방송」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춘하추동방송에는 최근 3, 4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일들이 있었다. 2011년 3월 15일, 한국아나운서클럽 회보가 발간 되면서 모든 放送史料들이 공유되고 춘하추동 방송은 한국아나운서클럽과 함께 했다. 처음에는 아나운서가 아닌 이장춘이 아나운서 클럽에 참여하는 것이 어색함도 있었지만 특별회원이다, 준회원이다 해서 함께하려는 배려로 한 가족이 되었다. 이로부터 현역모임인 한국아나운서 연합회와 각 방송사 아나운서실의 현역 아나운서들, 1950년대 KBS 여성 아나운서 모임, MBC초록회 등 아나운서가 모이는 곳이면 이장춘은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현장에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되었다. 각 放送社의 벽을 넘고 전, 현직, 세대를 초월해서 그리고 바다건너, 국경 넘어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한국아나운서라는 이름을 단 분들과 얘기를 나누노라면 순식간에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1년이 지난다. 춘하추동방송 10년이 되는 날, 2015년 4월 24일! 한국아나운서 클럽에서는 축하화분을 보내주시고 그날 있었던 편집회의에 초대 해주셨다. 그날의 모임에서 춘하추동방송에 올라있는 한국아나운서클럽 관련 글과 클럽회보를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설정해서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즉시「한국아나운서클럽」 카테고리가 마련되고 그 글을 모았으며 지난날의 클럽회보를 모두 올렸다. 다만 회보 용량이 커서 올릴 수 없는 부분은 출판사와 상의해서 차츰 올리기로 했다. 글을 한곳에 모아 놓고 보니 일관성이 있어서 찾기도 쉽고 보기도 좋았다. 의견을 들어가며 지금까지 올라있는 100여 편의 아나운서 글을 이 카테고리에 모두 모아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늘 함께 하는 국내 아나운서 예기는 다음기회로 미루고 바다건너 예기를 하려고 한다. 미국에는 국내에서 활동하시던 많은 아나운서들이 사신다. 생각나는 대로 홍양보, 호기수, 위진록, 유덕훈, 6.25전 아나운서로부터 김봉구, 김영우, 서정자, 노시창, 장인숙, 김정태, 김영호, 정영호, 송현식, 권윤기, 강미란, 홍우창, 아나운서와 민재호, 장기범, 최세훈 아나운서 가족 등등 이분들의 얘기가 모두 춘하추동방송에 올라있고 지금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국에서 고국을 그리시는 분들은 춘하추동방송과 더 가까이 한다. 50년간 미주 한국어 방송을 이끌어 온 한인방송의 원조 김엉우 아나운서는 2014년 2월 은퇴하면서 일생동안 모은 史料를 모두 춘하추동방송에 보내 오셔서 방송과 미주이민사 史料로 활용되고 있다. 김영우 아나운서와는 수시로 얘기를 나눈다. 지난 5월 25일 춘하추동방송과 함께하는 미주동요사랑회 회장이자 시인 이혜자님이 생방송을 위해 LA라디오서울에 들려 김미회 아나운서와 만나 그곳 방송인들이 춘하추동방송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으로 소식을 전해왔다. 5월 30일 채영신 아나운서의 기사를 올린 적이 있다. 그 기사가 미국에 전해진 즉시 미국 김정현 켈리포니아 대학교 한국학 도서관장으로부터 채영신 아나운서와 중학교 동창이라면서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는이메일이 왔다. 채영신 아나운서는 너무 반가워 당장 만나고 싶다고 했다. 최세훈 아나운서 딸 최철미는 6월 21일, 아버지의 추모문집 출판을 앞두고 춘하추동방송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세벽 2시부터 4시까지는 모두가 잠든 시간이지만 이장춘에게는 바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다. 미국 등 해외에 계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어제의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새로운 하루의 설계를 한다. 와이파이 카카오 톡을 활용하면 전화요금 부담이 없어서 필요하면 이것을 활용 대화를 나눈다.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하는 분들과의 만남에 이장춘에게는 밤낮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중 국내 분에게 새벽에 카카오 톡 등을 보내 잠을 깨우는 실례를 범하는 경우도 있다.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한 세월 바쁘고 때로는 어렵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참으로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이었다. 한국아나운서 클럽과 함께 하시는 분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춘하추동방송과 함께 하시는 분들을 비롯해서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2024년 5월 30일 춘하추동방송 카톡방에 올린 글 어제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보내신 분은 이계진회장님, 마음을 담으신 분은 아나운서 클럽 회원님들, 우체국에서 발송 하신 분은 김규홍 운영위원장님·유영미 사무총장님! 제가 아나운서 클럽과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은 아나운서 클럽 회보가 발간되던 2010년이었습니다. 「오늘 특별 초대 손님 엔지니어 이장춘을 소개 하겠습니다.」 박민정 사무총장님의 엄중한 소개를 받은 이래 아나운서 카톡 방을 처음으로 열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황인우 편집장님을 도우며 또 저 나름대로 아나운서 방송역사를 썼습니다. 그 무렵 여기 이 카톡 방도 함께 문을 열었지요. 그러니 이 카톡 방도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카톡 방 을 지켜 주신 분도 60분이 넘으십니다. 저는 한 가족으로 가까운 마음이고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선물 얘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흘렀네요. 오랜 세월 아나운서클럽 모임에 쉼 없이 참여 하다가 참여 못한지 꾀 오래 되었습니다. 꼭 참여해야 된다는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다가 못해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핑계 댔지요. 아나운서 클럽회장님이 공개석상에서 이장춘이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선언하셨고 기록영상 3총사(류인창·이태수· 박재헌)께서 이를 받아 유튜브를 통해서 세상에 공포 해버렸지요. 그 후로 저는 중 환자가 되어 그 모임에 잘 못 갑니다. (실은 제가 환자인 적이 없고 지금도 아픈 곳 없이 건강합니다) 봄 소풍 때 참여 못해서 받은 그 정성스러운 선물,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는 순간 너무 고맙고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습니다. 아나운서 클럽회원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나운서와의 인연, 아나운서를 사랑하는 마음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입니다. 김영우 (미국) 선생님 글 이 국장님 한국아나운서 클럽의 새로룬 회보가 나욌다는 희 소식 !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물론 훈륭한 회보를 출판하기까지 많은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임국희 신임회장님과 황인우 펀집국장님 이하 모든 분들에게 갑사합니다. 특희 옆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신 춘하추동방송의 이장춘 국장님 에게도 고맙다는 말씀 또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국내외 세계 각쳐이 있는 모든 우리말 아나운서들의 동향을 한 눈에 볼수있는 한국방송인클럽 회보 빨리 보고 싶습니다. 수고하세요.... 북가주 덴뷜에서 김영우 드림 답 글 멀리서 관심가져 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고마운 말씀 올립니다. 춘하추동방송에 한국아나운서클럽 제공으로 곧 그 회보 올려드리겠습니다. 미국에 회보가 도착 하기전 야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심을 빕니다. 윤후현(팔방미남)선생님 십년이면 강산이 변 한다.고 하는데,
방송계와 아나운서들에게는 춘하추동방송 불로그,가 있으므로 인하여 세월의 변화를 실감 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방송 50년사 를 비롯하여 방송계, 문화예술계, 사회 저명 인사들의 소식을 안방에 앉아서 볼 수 있는 곳은, 지상파 방송도 아니고, 일간 신문도 아닌 바로 춘하추동방송 불로그!라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딱 한번 이창춘 사장님!을 뵈었지만 내면에서 풍기는 참 모습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나운서들과의 끈끈한 인연을 바탕으로 한국 아나운서들의 발전하는 모습을 재 조명 해 주시고, 더 성숙된 방송 아나운서들이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수고를 해 주신 이장춘 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아울러 춘하추동방송 불로그! 개설 10 주년을 진심으로 축하 하오며, 이장춘 사장님!의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가수 김미성 팬 카페 회장, 팔방미남 윤후현~ 김무생(아나운서) 선생님 글 *이장춘 이사님! 그동안 노고가 퍽이나 많으셨습니다! 2015.6.15 일 발간된 "한국 아나운서 클럽 회보 제 18호" 에 <춘하추동방송 블로그 개설 10주년>에 "한국 방송역사의 보물창고 클럽회보도 볼 수있어....... " 가 실렸다니 이건 바로 일명 "한국 방송 역사의 보물창고의 든든한 관장님이시자 지킴이 이신 이장춘 이사님의 땀방울이 "한국 아나운서 클럽 회보"에도 스며있다는 얘기입니다. 전 이 글을 보며 문득 시선을 멈추고 "한국 방송 역사의 보물창고" 라는 말에 제 눈을한 번 비비고 읽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여기에 글을 올릴 때마다 즐겨쓰던 말이었기 때문이지요! 어떻든 "우리 한국방송 문화 역사의 보물창고의 관장님이시자 영원한 지킴이" 이신 이장춘 이사님의 땀의 결실ㅡ<매일 방문자 수 1000 여명, 2015.6.10 일 현재 누적 방문자 수 175만 여명의 파워 블로그> 는 이장춘 이사님 이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또 반세기를 아나운서와 함께하신 이사님은 한 선배 아나운서님의 말씀을 빌리면 "이장춘 이사님은 아나운서출신이 아니시면서도 아나운서에 대해 관심이 제일 많으신 분 중의 한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후배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 곳을 통해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해 드립니다! 틈이 나는대로 현장을 누비시는 이 이사님 늘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 우리 이 이사님의 정열적인 활동을 계속 지켜 보시면서 <우리 춘하 추동 방송>을 많이 사랑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언제나 건강하게 지내시고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어떤 일이든, 그 시작은 그리 큰 것이 아니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방송국에 몸담아 평생을 보내셨던 인연이 있었다해도, 국장님께선 그분들의 마음을 서로 연결해주고싶은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오늘의 춘하추동방송이라는 거대한 블로그로, 대한민국의 방송사에 으뜸가는 자리매김을 하셨습니다. 각각 서로 처한 현재의 위치는 다르다해도, 그분들이 제일 먼저 찾아 올 수 있는 인터넷 박물관을 채워오신 이장춘 국장님의 그간의 노고와, 자신을 비롯해 방송인들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시는데 앞장서 오신 이러한 기록들이 헛되지않고, 언젠가는 귀한 진가를 지니고 평가 받게 될날이 반드시 있을것이고, 날이 갈수록 귀한 방송 史料가 될것이라 확신합니다. 항상 동분서주하시며 바쁘신 국장님께 응원의 박수를 드립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족보로 본 KBS 아나운서 인명록 http://blog.daum.net/jc21th/17781146 MBC 문화방송 아나운서 그 이름(명단) 그 얼굴 사진 http://blog.daum.net/jc21th/17782218 DBS 동아방송의 목소리, 그때 그 아나운서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464 TBC 동양방송 목소리그 얼굴, 그 아나운서들, http://blog.daum.net/jc21th/17782344 대한민국 아나운서 명단 KBS MBC DBS TBC http://blog.daum.net/jc21th/17781384 한국아나운서클럽 MBC방문 http://blog.daum.net/jc21th/17782512 남산시절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418 아나운서 클럽 20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186 임국희 아나운서 한국아나운서클럽 제 8대 회장취임 동영상 http://blog.daum.net/jc21th/17782413 아나운서와 춘하추동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67 왕수복 아리랑.mp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