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1948년 8월 15일 광복의 날 방송국에선

이장춘 2022. 9. 19. 03:23

1. 이혜구(제 2방송과장), 2. 하덕봉(기사), 3. 김억(편성원), 4김진섭(편성원), 5.이정섭(협회 기획과장), 6.박경호(협회 전 기획과장), 7. 이계원(아나운서), 8. 모윤숙(편성원)

 

사진은 오랜 세월 우리말방송을 위해 힘을 기울였고, 해방과 함께 우리방송을 이끌었던 중추적인 인물들이다. 조선방송협회, 회장 이정섭·기술부장 한덕봉, 중앙방송국, 국장 이혜구· 편성과장 김 억 · 박경호, 업무과장 김진섭, 방송과장 이계원 등 해방정국을 대표하는 방송인들이다. 모윤숙은 곧바로 방송국을 떠나 정치·외교계로 옮겼다.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참전하고 두만강을 건너 8월 13일 대 출력 청진방송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에 앞서 8월 11일 아침 문제안 아나운서가 총독부에 들렸을 때 정보과에서 신문·방송을 장악하고 있던 무료바야시(無量林) 가 「조선에 대한 정책이 곧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총독부는 여운형과 안재홍을 찾고 있다.」는 뜻을 비쳐 해방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이를 방송인들에게 알렸다. 14일 밤에 해방소식이 들어온다. 는 말에 이혜구 과장은 문제안 아나운서에게 「同盟通信-도오메이 쯔우싱」에 가서 본문을 받아오라고 했다. "도오메이 쯔우싱"편집실서 기다리던 중 저녁 8시40분쯤 헌병대에서 지금까지 들어온 내용을 모두 불태우라’는 전화가 오더니, 곧 헌병들이 들이닥쳐. 기자들을 감금 12시쯤에 풀려났지만 항복방송 원문을 입수하는데 는 실패했다.

15일 아침 윤용로 아나운서가 천황 항복문서 원고를 "도오메이 쯔우싱"에서 받아 방송국에 와서 제2방송과 직원 7-8명이 번역 방송준비를 마쳤다.

12시가 되자 누군가가 외치는「기립」구령에 맞추어 모두 일어나 차려 자세로 항복방송을 들었고 조선 방송인들은 4시경 스튜디오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날의 얘기는 길고 길다. 사우회 사이버 박물관에 여러 편의 자세한 글이 있다.